하나의 씨앗처럼,

아이가 하나씩 세상을 풀어가는 것처럼,

자리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는 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이해해가는 일이다.

가고 가면서 주변의 풀, 온도, 습도, 흙, 나무, 바람, 앞산, 뒷산.... 주변에 있는 것들을 아는 것은 전체와 소통하는 길목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지를 만들고 천연염색을 하고 그 속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아마도 몸속에서 빠져나가버린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일 거다.

따뜻한 世上을 꿈꾸며 하루하루 神으로부터 부여받은 시간을 이어간다.

이른 새벽, 아궁이에 불을 넣고 닥나무를 쪄서 삶고 벗기는 일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새순에서 나무가 되고, 벗기고 삶고 두들겨 종이가 된다.

종이가 되기 위해서 밭에서 한해를 자라고 불을 만나고 흐르는 물을 만나고 햇빛과 바람,

겨울의 수북히 쌓인 눈을 만나고 펄펄 끓는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 방망이로 두들겨 맞고 난 후에야....... 종이가 된다. 하얀 닥종이가 된다.

종이를 만드는 시간은 내게 신을 만나는 시간이다.

불, 바람, 햇빛을 만나는 일이다.

그간 산속에서 이어온 시간을 종이에 담는 시간을 가져본다.